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7개월 연속 상승하며 3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전세 매물 품귀가 심화되고 전세금 급등이 이어지면서 서울을 떠나 경기권으로 향하는 ‘전세 난민’이 늘고 있다.
1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직장인 박모(42)씨는 최근 주말마다 안양, 수원, 광명, 부천 등 경기 지역을 돌아다니며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다. 현재 거주 중인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아파트 전셋값이 2년 만에 2억원 이상 뛰면서 서울살이를 포기했다.
박씨는 “직장과 아이 학교 모두 서울이라 떠나기 힘들지만 대출 한도를 다 채워도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미 계약갱신청구권을 한 차례 사용했지만 임대인과의 협의로도 해결되지 않았다.
정부가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와 고가주택 대출 규제를 포함한 10·15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뒤, 전세 매물은 급감하고 전셋값 상승세는 이어지고 있다. 계약 갱신이 늘면서 신규 매물은 거의 나오지 않고, 수도권 외곽으로 밀려나는 전세 세입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KB부동산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월 서울 아파트 중위전세가격은 5억7333만원으로 전월(5억6833만원)보다 503만원 올랐다. 1년 전(5억4667만원)보다 4.9%(2666만원) 상승했으며, 이는 2022년 11월(5억7667만원) 이후 3년 만에 최고치다. 중위가격은 전체 전세가격의 가운데 값으로, 고가·저가 거래에 따른 왜곡이 적다.
전세수급지수는 157.7로 전달(154.2)보다 3.5포인트 상승해 2021년 10월(162.2)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지수가 100을 넘으면 전세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의미다.
서울 인근 경기 지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과천, 하남, 성남, 광명 등 주요 지역에서 전세 물건이 줄고 가격은 오르고 있다. 하남 학암동 ‘힐스테이트센트럴위례(전용98.71㎡)’ 전세는 지난달 8억원에서 이달 8억5000만원으로 한 달 새 5000만원 상승했다. 성남 수정구 창곡동 ‘위례센트럴자이(전용84.94㎡)’ 전세도 7억7000만원에서 9억5000만원까지 뛰었다.
신규 공급 감소도 전세난을 부추기고 있다. 부동산지인에 따르면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1만5347가구로 올해(4만2835가구)보다 약 64.2% 감소한다. 2027년에는 9684가구로 줄어든다. 이는 연간 적정 수요(4만8000가구)에 한참 못 미친다.
전문가들은 전세난의 근본 원인으로 구조적인 주택 공급 부족을 지적했다. 권대중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 전세난이 심화되면서 세입자들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경기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주택 수급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으면 전세난이 서울뿐 아니라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서울과 경기 12개 지역의 강력한 규제로 갭투자가 막힌 상황”이라며 “전세 보증금은 오르고 대출은 제한돼 세입자들이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서울 전세시장 불안은 내년 이후 입주 물량이 급감하면서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세 수요는 꾸준히 유지되지만 공급은 줄고 있어 실수요자들의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