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MMM

중국의 고액 자산가들이 투자이민의 새로운 거점을 아랍에미리트(UAE)로 옮기고 있다. 싱가포르가 강화한 이민 규제와 세제 변화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두바이와 아부다비에서 중국인 부호들의 패밀리오피스 설립이 급증하며 자산 이동이 가속화되고 있다.

11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프라이빗 뱅커와 자산관리 전문가들은 지난 1년 사이 두바이와 아부다비에 패밀리오피스를 세우려는 중국인 고객의 문의가 급증했다고 밝혔다.

패밀리오피스는 초고액 자산가가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하는 개인 투자회사로 특정 국가에 설립하면 영주권이나 시민권 취득이 용이해진다.

UAE는 투자자와 전문직을 대상으로 10년간 거주가 가능한 ‘황금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황금비자 발급 건수는 2021년 47000건에서 2022년 8만 건으로 늘었다. 두바이 역외금융센터의 가족 관련 기관 수도 올해 상반기 1000개로 집계돼 2023년 말 600개, 2024년 말 800개보다 크게 증가했다. 자산관리업계는 이 같은 증가세가 상당 부분 중국 부호들 때문이라고 전했다.

스탠다드차타드 싱가포르 지사의 글로벌 자산관리 책임자 마이크 탄은 “동아시아 고객들의 두바이 이주 문의가 작년에 급증했다”며 “중국인들은 패밀리오피스를 통해 거주 자격을 확보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걸프 지역을 매력적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자산관리 서비스업체 라이트하우스 캔톤의 프라샨트 탄돈 UAE 사업부 상무이사는 최근 중국인 고객 증가로 인해 중국어를 구사하는 금융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산이 5000만~2억달러 수준의 중간층 부호들이 가장 많이 UAE로 이동하고 있다”며 “이들은 중국 본토나 홍콩에서 사업하는 데 압박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의 이민 규제 강화도 부호들의 발길을 돌리게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현지 이민 컨설턴트들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영주권 및 시민권 승인 비율은 8%를 약간 넘는 수준으로 거주 자격을 얻기 쉽지 않다. 특히 지난해 중국 푸젠성 범죄조직과 연관된 대규모 자금세탁 사건 이후 심사가 한층 까다로워졌다. 이에 비해 시민권 취득이 용이하고 세금 정책이 온건한 UAE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두바이의 자산관리업체 M/HQ의 얀 므라젝 파트너는 “많은 중국인 가족이 UAE에 재투자하기 위해 싱가포르 부동산을 매각했다”며 “싱가포르는 패밀리오피스 설립과 취업 허가가 쉬운 반면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얻기는 훨씬 더 어렵다”고 설명했다.

가상화폐 정책도 중국 자산가들의 이동을 촉진하고 있다. 두바이에서는 규제기관의 허가를 받은 가상화폐 기업이 39곳에 달한다. 반면 싱가포르는 올여름부터 무허가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다.

라이즈프라이빗의 케빈 텅 대표는 “가상·디지털 자산 분야의 중국 고객들이 각국의 규제 환경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며 “점차 중동으로 방향을 돌리는 추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