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의 월급에서 매달 빠져나가는 국민연금이 사업주 체납으로 공중분해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7일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들어 국민연금 체납액이 5000억 원을 넘어서며 지난해 한 해 수준을 이미 추월했다. 사업주가 근로자 몫의 연금을 원천징수하고도 납부하지 않은 채 방치하면서 근로자의 노후 준비가 송두리째 사라질 위험에 놓였다.
특히 13개월 이상 4대 사회보험 장기 체납액은 2024년 말 기준 1조1217억 원이었다. 이 가운데 국민연금 체납액은 4888억 원으로 전체의 44%를 차지해 가장 큰 비중을 기록했다. 국민연금 체납액은 2021년 5817억 원에서 지난해까지는 꾸준히 감소했지만 올해 6월 기준 5031억 원으로 다시 급증했다.
가장 오랜 기간 납부하지 않은 사업장은 무려 213개월, 즉 17년 동안 보험료 1억6000만 원을 체납했다. 또 다른 사업장은 2년 2개월 만에 26억 원 이상을 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 체납이 사회보험 중에서도 특히 심각한 이유는, 사업주가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근로자는 매달 자신의 부담금 4.5%를 이미 납부한 셈이지만 해당 기간이 가입 기간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이나 고용보험, 산재보험은 사업주가 체납하더라도 근로자가 근무 사실을 증명하면 혜택을 정상적으로 받을 수 있다. 정부가 우선 보장한 뒤 사업주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사업주가 미납하면 근로자 가입 기간이 인정되지 않는다. 결국 근로자는 월급에서 이미 빠져나간 돈을 다시 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지게 된다.
현행법상 ‘개별 납부’ 제도를 통해 일정 부분 구제가 가능하지만 조건이 까다롭다. 근로자가 이미 낸 자신의 부담금(4.5%)을 다시 납부해야 하고 그마저도 가입 기간의 절반만 인정받는다. 100% 인정을 원할 경우 근로자는 본인 부담분과 사업주 몫을 합한 9% 전액을 혼자 내야 한다.
이처럼 근로자에게만 불리한 구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연금 체납에 대한 실질적 제재는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0년간 국민연금 체납으로 형사 고발된 건수는 855건에 불과했으며 이들이 체납한 418억 원 중 실제 징수된 금액은 82억 원으로 징수율은 19% 수준이었다. 같은 기간 ‘폐업’이나 ‘징수 불능’ 등의 사유로 종결 처리된 체납액은 1157억 원에 달했다.
한편, 올해 들어 국민연금 체납이 다시 급증하면서 근로자 보호 장치의 실효성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만 유독 근로자에게 손해가 전가되는 현 제도의 불합리를 지적하며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이에 정부는 체납 사업장 단속을 강화하고, 장기 체납액의 강제 징수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근로자 피해 복구를 위해서는 ‘납부 사실과 무관한 근무 기간 인정’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