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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과 은에 이어 산업용 금속 가격이 일제히 치솟고 있다. 구리 가격은 사상 처음으로 톤당 1만2000달러를 넘어섰고 백금과 팔라듐 역시 최고치를 경신했다. 제조업 둔화 속에서도 구리의 상승세는 꺾이지 않고 있으며 인공지능(AI) 전력 인프라 투자 확대와 공급난이 맞물리면서 금속시장 전반의 과열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2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런던금속거래소에서 국제 구리 가격은 전일 대비 1% 이상 상승해 톤당 1만2160달러까지 올랐다가 1만206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구리 가격은 올해 들어 37% 상승해 2009년 이후 최대 폭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네덜란드 경제정책분석국(CPB)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전 세계 산업 생산 증가율은 전년 대비 2.4%에 그쳤다. 제조업 가동률이 둔화된 상황에서도 구리 가격은 오히려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외신들은 이번 강세가 경기 회복보다는 공급 차질과 지역별 가격 격차 확대, 재고 이동 등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내년 구리에 추가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업들의 ‘사재기’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동시에 주요 구리 광산의 사고와 기상이변이 공급난을 가중시켰다. 인도네시아 그라스버그 광산은 지난 9월 산사태로 생산이 중단됐고 콩고민주공화국과 칠레의 광산에서도 홍수와 터널 붕괴가 발생했다.

메리츠증권 장재혁 연구원은 “대형 광산 차질과 정광 공급 부족으로 공급 여건이 타이트한 상태”라며 “제련 수수료(TC)가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공급 압박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한화투자증권 김유민 연구원은 “관세 불확실성으로 인해 구리 재고가 특정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단기 수급이 왜곡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AI 산업 확대도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구리는 전기 전도성이 뛰어나 전선과 전력 장치에 필수적으로 쓰인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냉각 인프라 구축에 따라 구리의 수요 중심이 제조업에서 인프라 투자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는 2030년까지 구리 수요 증가분의 약 60%가 전력 인프라에서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공급 측면에서도 새로운 광산 개발이 제한적이어서 가격 상승 압력이 지속될 전망이다. 씨티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내년 초 구리 가격이 톤당 1만3000~1만5000달러 범위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백금과 팔라듐 가격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백금 현물 가격은 온스당 2274.10달러까지 상승했다가 2268.9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팔라듐은 온스당 1874.22달러로 최근 3년 사이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럽연합(EU)이 2035년 내연기관 차량 판매 금지 계획을 철회한 것이 촉매 금속 수요 증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두 금속은 자동차 배기가스 저감 장치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