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확산이 장기적으로는 새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단기적으로는 미국 노동시장에 구조적 실업을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실제로 올해 미국에서는 AI를 이유로 한 대규모 인원 감축이 발생하며 고용 대체 현실이 수치로 확인됐다. 기술 혁신의 속도가 고용 구조 변화보다 앞서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21일(현지시간) 한국은행 뉴욕사무소 김좌겸 차장은 ‘2026년 미국경제 전망 및 주요 이슈’ 보고서를 통해 AI 확산이 미 고용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보고서는 올해 하반기 미국 고용시장이 부진한 배경 중 하나로 AI의 노동력 대체 효과를 지목했다. 다만 이러한 부정적 영향은 단기에 국한되고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전체 고용 규모를 늘릴 것이라는 기대가 우세하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동시에 하방 위험도 분명히 했다. AI 확산이 노동시장 변화를 촉발하며 구조적 실업을 장기간 증가시킬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특히 구조적 실업은 경기침체와 결합될 경우 더 크게 확대될 수 있다고 봤다. AI 자동화가 경기침체 대응 수단으로 기존 노동력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활용된다면 노동시장 침체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보고서는 AI 기술혁신이 중립금리와 자연실업률 등 거시경제 구조 자체를 변화시킬 가능성도 언급했다. 이는 미 연방준비제도 등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운용 환경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다. 중립금리는 인플레이션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고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실질금리를 뜻한다.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MIT와 미국 에너지부 산하 오크리지국립연구소 공동 연구진은 지난달 26일 현지시간 현재 도입된 AI 기술이 미국 노동력의 11.7%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기술 직군뿐 아니라 인사 물류 재무 등 다양한 직군에서 AI 활용이 확산하고 있으며 도시와 비도시를 가리지 않고 노동시장 전반에 구조적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고용 현장에서는 AI를 사유로 한 감원이 이미 본격화됐다. CNBC는 21일 현지시간 컨설팅업체 챌린저 그레이 앤 크리스마스 조사 결과를 인용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미국에서 감축된 일자리가 117만개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이 가운데 AI가 직접적인 사유로 언급된 감원은 54694개였다.
AI 관련 주요 기업에서도 인원 감축 사례가 이어졌다. 세일즈포스는 지난 9월 AI 도입을 이유로 고객 지원 인력 약 4000명을 감원했다. IBM은 AI 에이전트를 활용하면서 올해 인사 업무 인력 수백 명을 줄였다.
크라우드스트라이크는 AI를 직접적 사유로 전체 인원의 5%에 해당하는 약 500명을 감원했다. 워크데이는 AI 투자 확대를 이유로 올해 2월 전체 인력의 8.5%인 1750여 명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챌린저는 올해 미국 내 감원 규모가 코로나19 사태로 대량 해고가 발생했던 2020년 이후 최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CNBC는 인플레이션과 관세 등으로 비용 압박이 커지면서 기업들이 AI로 기존 인력을 대체해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AI 확산은 생산성 향상과 고용 창출 기대를 동시에 안고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노동 대체와 구조적 실업이라는 부담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 고용시장은 경기 흐름과 AI 자동화 전략이 결합될 경우 장기 침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환경 역시 기술 변화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되며 AI가 고용과 거시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을 둘러싼 논의는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