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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국내 증시는 유동성 랠리가 1분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하반기부터는 경기 둔화와 AI 버블 논란 등으로 진정한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내년 초까지는 유동성 확대 기대감이 증시 상단을 받치겠지만 이후에는 실적 중심의 선별 장세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23일 이상헌 iM증권 연구원은 “내년 초까진 유동성 장세가 지속되지만 하반기에는 진짜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유동성과 실적이 동시에 증시를 견인했던 올해와는 다른 양상이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올해 증시 상승은 4월 탄핵 정국 이후 외국인 수급 유입과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 금리 인하 기대감이 맞물리며 형성된 유동성 장세 덕분이었다. 실제 코스피는 5월 말 2690선에서 7월 말 3240선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9월 이후 나타난 ‘2차 랠리’는 AI 산업의 구조적 변화가 중심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 연구원은 “AI가 단순 학습 단계를 넘어 추론 단계로 진입하면서 데이터센터의 역할이 달라졌고 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급증했다”며 “이로 인해 고성능 메모리뿐 아니라 범용 D램 수요까지 늘면서 메모리 가격이 반등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개선 기대가 커지며 국내 증시에는 유동성과 실적 장세가 동시에 작용했다. 코스피 5000 가능성까지 거론됐지만 그는 “9월 이후 급등 구간에서 상당한 실적 기대가 이미 반영됐다”며 신중론을 유지했다. 실제 11월 초 코스피는 4221.87까지 올랐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42배로 높아진 뒤 외국인 매도세가 확대됐다.

현재 코스피가 4100선 부근을 오가는 것은 실적보다는 유동성 기대가 작용한 결과다. 그는 미 연준이 단기 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400억달러 규모의 단기국채(T-bill) 매입 계획을 발표한 점을 언급하며 “이는 본격적 양적완화는 아니지만 유동성 확대 가능성을 촉발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내년 1분기까지는 상단이 높아진 박스권 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하반기부터는 미국 경기 둔화 가능성이 가장 큰 변수로 지목됐다. 미국 GDP의 60%를 차지하는 소비지표가 고용지표와 직결되는 만큼 이미 지난해 중반 이후 고용 둔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내년 2분기 이후 소비 둔화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AI 투자 사이클도 변화 중이라 하반기 이후엔 수익성 검증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며 “AI 버블론에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유안타증권도 내년 증시가 ‘유동성+실적 검증’ 국면에 들어설 것이라며 종목 선별 장세를 전망했다. 신현용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코스피는 11월 이후 AI 밸류에이션 부담이 커지며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멘텀 투자전략은 최근 코스피 대비 3.8%포인트 언더퍼폼하며 성과가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신 연구원은 “이익 개선세는 유지됐지만 디스카운트 해소 정책의 구체화 과정에서 시장 기대감이 오히려 우려로 전환됐다”며 “밸류에이션 하락이 불가피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내년부터는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며 디스카운트 해소와 실적 개선이 동시에 반영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2026년 1월 실적시즌이 시작되면 이익과 주가의 연동성이 다시 커질 것”이라며 “4분기 실적 쇼크 종목보다 서프라이즈 종목의 초과 수익이 확대될 시기”라고 말했다. 이어 “견조한 이익 기대감 대비 11·12월 주가 부진으로 밸류에이션 부담이 낮아진 종목이 재조명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까지는 유동성 랠리가 유지되더라도 하반기 이후에는 경기 둔화와 AI 투자 위축이 증시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정책 효과가 실제로 나타나는 시점과 미국 소비 둔화 국면이 맞물릴 경우 종목별 변동성이 확대될 전망이다. 결국 내년 증시는 유동성의 힘에서 실적과 펀더멘털로 중심이 이동하는 전환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