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제도 시행 37년 만에 두 가지 상반된 현상이 동시에 나타났다. 조기노령연금 수급자가 100만명을 넘어섰고, 장기가입자 중심의 고액 연금 수급자도 꾸준히 늘어나며 최고 월300만원대 수령자가 등장했다. 은퇴 후 소득이 끊긴 세대의 생계형 조기 수급과 장기 납입으로 연금을 키운 수급자의 현실이 같은 제도 안에서 대조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9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조기노령연금 수급자는 100만0717명으로 처음 100만명을 돌파했다. 불과 한 달 뒤인 8월에는 100만5912명으로 늘었다. 조기 수급자는 남성 66만3509명, 여성 34만2403명으로 남성이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조기노령연금은 법정 연금 개시 시점보다 1년에서 최대 5년까지 앞당겨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조기 수급을 선택하면 1년마다 연금액이 6%씩 줄어들어 5년 앞당길 경우 원래 금액의 70%만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조기 수급자가 100만명을 넘어선 것은 퇴직 이후 소득 공백을 견디기 어려운 장년층이 급증했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조기 수급 급증은 2023년부터 뚜렷하게 나타났다. 당시 상반기 신규 신청자 수는 6만3855명으로 2022년 한 해 전체 신규 수급자 수(5만9314명)를 이미 넘었다.
수급 개시 연령이 만62세에서 만63세로 늦춰지면서 1961년생이 직격탄을 맞았고, 이들이 1년의 ‘소득 절벽’을 견디지 못해 조기 신청으로 몰렸다.
또한 2022년 9월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으로 피부양자 자격 기준이 연소득 3400만원 이하에서 2000만원 이하로 낮아지면서, 건보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금 수령액을 조정하는 사례도 늘었다. 은퇴자들 사이에서는 연간 수령액이 2000만원을 넘지 않도록 연금액을 줄여 받는 선택이 현실적인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국민연금이 ‘용돈 연금’이라는 오명을 벗고 실제 노후소득 기반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지표도 나왔다. 지난 8월 기준 월 100만원 이상 국민연금 수급자는 100만4147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월200만원 이상을 받는 수급자는 8만4393명이며, 월300만원 이상을 받는 수급자는 16명이다. 최고 수급액은 318만5040원이다.
이들 고액 수급자는 국민연금제도 시행 초기부터 30년 이상 보험료를 납입하고 ‘노령연금 연기제도’를 활용해 연금 수령 시기를 최대 5년 늦춘 가입자들이다. 연기제도는 보험료를 더 내지 않고도 연금 개시 시점을 늦춰 매달 수령액을 늘릴 수 있게 한 장치다. 국민연금은 최소 10년 이상 가입해야 수급 자격이 생기며 납입 기간이 길수록 연금액이 커진다.
아울러 기금 운용 규모는 130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7월말 기준 적립금은 1304조4637억원으로 전년도 말보다 91조원 이상 증가했다. 올해 들어 7월까지의 운용 수익금만 84조1658억원으로, 보험료 수입 외에도 투자 수익이 기금 성장을 견인했다. 국민연금의 자산 구성은 국내 채권 325조원, 해외 주식 467조원, 국내 주식 199조원 순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조기 수급 증가와 고액 수급 확대라는 상반된 흐름이 동시에 나타나는 점을 지적하며 정년 연장과 재취업 활성화, 건강보험료 제도 보완 등 실질적 노후소득 정책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