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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기관 자금이 동시에 자동차株로 이동하고 있다. 뉴욕 증시의 인공지능(AI) 투자 열기가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선 사이, 완성차 기업의 기술 경쟁력과 성장성이 재평가되며 자금이 빠르게 몰리는 추세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기금은 최근 일주일(1~8일) 동안 현대차 1468억원, 현대모비스 962억원, 기아 535억원을 순매수하며 자동차 업종에 집중 투자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 투자자들도 현대차를 4562억원어치 사들였다. 이는 삼성전자(6303억원)에 이어 코스피 전체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순매수 규모다.

외국인은 기아 762억원, 현대차우 271억원, 현대모비스 268억원어치도 추가로 매수하며 자동차주 비중을 확대했다. 특히 지난 4일에는 현대차가 외국인 순매수 1위(1310억원)를 기록했다.

수급 변화는 미국의 ‘대미 관세 15% 인하’와 ‘11월 소급 적용’ 확정 이후 본격화됐다. 한국산 자동차 관세 완화 소식이 전해진 지난 2일부터 외국인의 매수세가 급격히 늘었고, 단기 급등에 따른 일부 차익 실현(-600억원)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유입세가 이어졌다.

현대차 주가는 지난달 말 대비 20.65% 상승했다. 같은 기간 기아는 10.18%, 현대모비스 19.05%, 현대글로비스 10.56%, 현대차우 9.42% 오르며 코스피 상승률(4.21%)을 크게 웃돌았다.

이와 관련해 대신증권 정해창 연구원은 “자동차 업종이 코스피 상승을 견인했다”며 “대미 관세 인하와 소급 적용 확정 이후 긍정적 모멘텀이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기금의 매수세도 방향이 같다. 기관은 최근까지 주도해온 삼성전자(-560억원), 네이버(-384억원), 셀트리온(-333억원), 알테오젠(-294억원)을 순매도하며 차익을 실현한 반면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했다. AI 투자 수혜가 반도체에서 차량용 소프트웨어와 로보틱스로 확장되자 완성차가 새로운 투자처로 부상한 것이다.

증권가에서는 현대차그룹의 AI·로봇 기술 경쟁력이 재평가되는 점을 주요 원인으로 본다. 그동안 국내 완성차 기업은 제조 경쟁력에 비해 소프트웨어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다만 최근 엔비디아와의 협업 확대, 이동형 로봇 출시 등으로 기술 격차를 좁히면서 시장의 시선이 달라졌다.

삼성증권 임은영 연구원은 “전기차에서 자율주행, 로봇 사업까지 확장을 추진하는 기업은 테슬라, 현대차그룹, 중국 전기차 기업 등 5~6곳에 불과하다”며 “현대차그룹이 AI 기업으로 진전할수록 밸류에이션이 중국 상위 전기차 기업 수준으로 재평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DS투자증권 최태용 연구원은 “로보틱스 산업 성장으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가치가 피규어 AI 수준으로 평가받을 경우 현대차의 지분가치는 약4조6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의 AI칩 ‘블랙웰’ 5만장을 도입하고, 오는 2030년까지 총125조2000억원을 국내 투자에 투입할 계획이다. 투자금의 약70%는 AI 데이터센터, 로봇 제조, 파운드리 공장 구축에 사용될 예정이다.

또한 정의선 회장이 현대모비스 분할을 통해 지배구조 개편에 나설 가능성도 투자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DS투자증권 김수현·최태용 연구원은 “현대모비스 중심의 지배구조 재편이 유력하며 분할 전 현대모비스 가치 상승이 승계 재원 확보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현대모비스가 그룹 내 최대 수혜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한편 증권가에서는 연기금과 외국인 모두가 자동차주로 이동하는 이번 현상을 “AI 기술 전환기의 산업 지형 변화”로 해석하고 있다. 반도체 중심의 성장 흐름이 모빌리티·로보틱스로 확장되면서 완성차 기업이 새로운 성장축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