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있는 피터 틸 (사진= 나노바나나 제작)
페이팔 공동창업자이자 실리콘밸리 대표 투자자인 피터 틸이 엔비디아 보유 지분을 전량 매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틸이 이끄는 헤지펀드 틸 매크로는 3분기 보고서를 통해 약 1억달러 규모의 엔비디아 주식 53만7742주를 모두 처분했다. AI 투자 열기가 정점을 찍은 가운데 주요 투자자들이 잇따라 포지션을 조정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틸 매크로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13F 보고서에서 엔비디아 지분 매각 사실을 공개했다.
해당 보고서는 운용자산 1억달러 이상인 기관 투자자의 분기별 보유 현황을 담는다. 현재 틸 매크로의 주요 포트폴리오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테슬라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3분기 동안 애플과 MS 투자는 늘리고 테슬라 지분은 상당 부분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는 이번 매각이 “AI 열풍에 대한 투자자들의 경계심이 커지는 시점에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틸의 결정은 엔비디아가 AI 반도체 시장의 선두주자로 부상하며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 반열에 오른 직후 나온 것이다.
영화 ‘빅 쇼트’의 실제 주인공인 마이클 버리 역시 최근 엔비디아와 AI 소프트웨어 기업 팔란티어의 주가 하락에 베팅하며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그는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두 기업의 풋옵션을 매수했다고 밝혔다. 풋옵션은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을 팔 수 있는 권리로 주가가 떨어질 경우 수익이 발생한다. 버리는 “가끔 우리는 버블을 본다”라는 글을 남겨 AI 시장의 과열을 암시했다.
버리는 또한 MS와 알파벳 등 대형 기술기업의 회계 처리 관행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이들이 설비투자 비용의 감가상각 기간을 늘려 단기 비용을 축소하고 이익을 부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산업 전반의 거래 규모를 부풀리며 실질 성장보다 투자 기대감으로 시장이 과열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 역시 지난달 58억3000만달러 규모의 엔비디아 주식을 매각했다. 손정의 회장은 이 자금을 다른 AI 관련 투자 재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터 틸과 손정의의 매각 이유가 동일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두 사람 모두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5조달러를 넘어선 시점에 매도를 단행한 점이 주목된다.
엔비디아 주가는 3분기 동안 약 18% 상승했으나 17일 뉴욕증시에서는 1.88% 하락 마감했다. 블룸버그가 909개 헤지펀드의 13F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161개 펀드는 엔비디아 보유 지분을 늘렸고 160개 펀드는 줄인 것으로 나타나 투자 심리가 양분된 모습이다.
한편, 피터 틸이 설립한 벤처캐피털 파운더스 펀드는 오픈AI에도 투자한 이력이 있다.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이 펀드는 2025년 3월 오픈AI가 3억달러 가치로 평가될 당시 마지막 투자를 집행했다. 이 밖에도 틸은 서브스트레이트, 머코르, 코그니션AI 등 다수의 AI 스타트업에 자금을 투자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