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본격 가동되며 퇴직연금 개혁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10년간 연평균 2.34%라는 낮은 수익률에 머문 퇴직연금 제도를 두고 ‘기금형’ 도입이 핵심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17일 국회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퇴직연금은 2005년 12월 제도 도입 이후 적립금이 431조원 규모로 성장했지만, 수익률과 가입률이 모두 부진해 국민연금에 이은 제2의 노후 보장 장치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가장 큰 문제는 수익률이다. 지난 10년간(2015~2024년)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은 2.34%로 같은 기간 평균 임금 상승률 3.47%에도 못 미친다. 국민연금의 평균 수익률 6.56%와 비교하면 격차는 더욱 크다.
전문가들은 현 제도의 한계를 ‘계약형 구조’에서 찾는다. 근로자가 직접 상품을 선택해야 하는 구조로 인해 복잡한 금융상품이 난립하고 전체 적립금의 83%가 예·적금 등 원리금보장상품에 묶여 있는 실정이다. 2022년 7월 도입된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도 가입자가 직접 신청해야 하는 ‘옵트인’ 방식이어서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기금형 퇴직연금’은 개인이 아닌 독립된 수탁법인이 자금을 모아 국민연금처럼 전문적으로 운용하는 방식이다. 2022년 9월 도입된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푸른씨앗’은 근로복지공단의 운용 아래 3년간 연평균 6% 이상의 안정적 수익률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현재 국회에는 서로 다른 운용 주체를 중심으로 한 3가지 기금형 법안이 제출돼 있다. 우선, 는 한정애 의원이 발의한 ‘대기업 자율형’으로, 가입자 3만명 또는 적립금 3000억원 이상 대기업이 노동부 허가를 받아 비영리 수탁법인을 직접 설립하고 노사가 자율 운용하는 방안이다.
다음은 안도걸 의원이 제시한 ‘금융사 경쟁형’으로, 중소기업은 ‘푸른씨앗’을 확대 적용하고 그 외 기업은 금융사가 세운 ‘퇴직연금기금전문운용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세 번째는 박홍배 의원의 ‘공공기관 주도형’으로, 고용노동부 산하에 ‘퇴직연금공단’을 신설해 ‘푸른씨앗’을 이관받고 중소기업 기금을 통합 운용하는 모델이다.
연금특위는 향후 이 세 가지 안을 통합 심사해 최종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자산운용의 전문성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해외 및 대체투자를 포함한 중장기 포트폴리오를 안정적으로 구성할 수 있어야 하며, 노사의 대표성을 반영하면서도 전문성을 저해하지 않는 효율적인 지배구조 마련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또 퇴직연금은 법정 의무가입 제도로서 준공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 운용 주체가 누구든 국민 노후 자산을 성실히 관리할 선관의무(fiduciary duty)를 법제화하고 감독당국의 관리 감독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편 연금특위는 이번 회기 내 기금형 도입의 기본 방향을 확정하고 내년 상반기 중 구체적 시행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퇴직연금의 저조한 수익률 개선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향후 논의 결과에 따라 국민 노후자산 운용의 패러다임이 크게 바뀔 가능성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