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이 2024년 0.75명으로 9년 만에 소폭 반등했지만,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수십조 원의 저출산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출산과 육아의 핵심 당사자인 여성들이 직장에서 임신을 눈치보며 숨기고, 사업주들은 가임기 여성 채용을 꺼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 원인은 임신과 출산에 따른 비용을 고스란히 사업주에게 떠넘기는 현행 제도에 있다.
사업주에게 떠넘겨진 출산 비용의 현실
출산휴가 비용 부담의 이중고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90일(다태아 120일)의 출산전후휴가를 부여해야 하며, 최초 60일에 대해서는 사업주가 통상임금의 100%를 지급해야 한다. 대규모 기업의 경우 이 60일 전액을 사업주가 부담하고, 중소기업(우선지원대상기업)도 월 210만원을 초과하는 부분은 사업주가 부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월급 300만원을 받는 직원이 출산휴가를 가면, 대기업은 최초 60일 동안 600만원을 순수하게 사업주가 부담해야 한다. 중소기업도 월 210만원을 초과하는 90만원씩 2개월, 총 180만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출산휴가 기간 동안에도 연차휴가는 정상적으로 발생하고, 퇴직 시 이에 대한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여기다 1년 이상 근무한 여성이 출산휴가 후 퇴사할 경우 퇴직금 지급 의무까지 생긴다. 연차휴가도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기업은 임산부의 미사용 연차수당과 퇴직금까지 비용으로 떠안아야 한다. 이런 부담 때문에 기업들은 채용 과정에서 임신 가능성을 기피하거나 애초에 여성의 채용 시기를 늦추기 일쑤다. 노동현장에서는 “임신·출산이 곧 비용”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대체인력 채용과 교육훈련 비용의 숨은 부담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으로 인한 업무공백을 메우기 위해 대체인력을 채용하면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신규 인력 채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집비, 면접비, 교육훈련비 등은 모두 사업주 몫이다. 기존 직원이 업무를 숙지하는데 평균 3-6개월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기간 동안의 생산성 저하와 교육비용은 상당한 수준에 이른다.
정부가 2025년부터 대체인력 지원금을 월 120만원으로 확대했지만, 실제 대체인력 채용에 드는 총비용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특히 전문직이나 숙련직의 경우 대체인력을 구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업무 숙련도 차이로 인한 손실은 금전적 지원으로 메우기 힘들다.
여성 채용 기피로 이어지는 악순환
인사담당자 절반이 인정한 여성 채용 기피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 인사담당자의 50.3%가 채용 시 여성 지원자를 기피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32.9%는 여성 지원자의 역량이 남성보다 우수했음에도 성별을 이유로 불합격시킨 적이 있다고 밝혔다. 여성 채용을 기피하는 이유로는 ‘야근·출장 등에서 인력활용이 어려워서’(50.7%)가 1위를 차지했고, ‘육아문제에 부딪칠 것 같아서’(19.2%), ‘결혼 등으로 금방 퇴사할 것 같아서’(17.8%)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동일 조건일 때 남성을 선호한다고 답한 인사담당자가 67.4%에 달했으며, 그 이유로 ‘오랫동안 근무할 것 같아서’(32.4%)를 꼽았다. 이는 사업주들이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비용 부담과 업무 공백을 우려하여 애초에 여성 채용을 기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면접장에서 벌어지는 임신 관련 차별
현행 남녀고용평등법은 사업주가 근로자를 모집·채용할 때 직무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미혼 조건을 제시하거나 요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면접 현장에서는 여성 지원자에게만 “남자친구가 있나요?”, “결혼 계획이 있습니까?”, “아이가 갑자기 아픈데 회사에 중요한 미팅이 잡힌다면?” 같은 질문들이 여전히 쏟아지고 있다.
이런 질문들의 배경에는 임신과 출산에 따른 비용 부담을 온전히 사업주가 져야 한다는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법적으로는 차별이 금지되어 있지만, 경제적 부담에 대한 우려가 실질적인 채용 차별로 이어지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경력단절 여성의 사회적 비용: 연간 15조원의 손실
막대한 사회적 비용
2014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여성의 경력단절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총 195조원, 연간 15조원에 달했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9%에 해당하는 막대한 손실이다. 경력단절 이후 임금을 받지 못해서 발생한 손실액이 120조원(61.5%)으로 가장 컸고, 재취업 전후의 임금 손실액도 64조원(32.8%)에 이르렀다.
현재 경력단절 여성은 139만 7000명으로, 이들 중 30-39세가 108만 1000명(55.3%)으로 가장 많다. 이는 한창 경제활동을 해야 할 시기의 고학력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노동시장에서 이탈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재취업 시 고용의 질 하락
경력단절을 경험한 여성들이 재취업할 때 이전과 같은 수준의 임금이나 고용안정성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육아 때문에 경력이 단절된 후 다시 구할 수 있는 것은 주로 비정규직 일자리이고, 이는 저임금과 고용불안정으로 이어진다. 여성 노동자의 절반 넘는 수가 비정규직이며, 여성 노동자 5명 중 1명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
해외의 선진적 지원 시스템
프랑스의 포괄적 가족 지원 정책
프랑스는 1993년 합계출산율 1.66명에서 2010년 2.02명까지 끌어올려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의 배경에는 국가 차원의 포괄적 지원이 있다. 프랑스의 GDP 대비 가족지원예산은 3.44%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프랑스는 임신부터 출산까지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국가 의료보험에서 100% 부담하며, 불임치료비도 전액 지원한다. 또한 맞벌이 부부가 만 6세 미만 자녀에 쓰는 보육시설 이용비, 돌보미 고용 비용의 50%에 대해 세액공제(최대 1750유로, 약 261만원) 혜택을 준다. 기업의 보육시설 투자비용에 대해서도 60%의 세금을 감면해주고 있다.
북유럽의 아버지 할당제와 유연근무
스웨덴은 자녀 한 명당 육아휴직을 최대 480일 사용할 수 있으며, 그중 90일은 무조건 아빠가 쓰도록 하는 ‘아버지 할당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자녀 양육 책임을 남녀가 동등하게 지도록 하여 여성에게만 집중되던 육아 부담을 분산시키고 있다. 또한 가사도우미 고용 시 인건비의 50%에 대해 세금을 감면하는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제도 개선을 위한 구체적 방안
국가의 출산휴가 비용 부담 확대
현재 중소기업에만 제한적으로 지원되는 출산휴가 급여를 대기업까지 확대하고, 지원 한도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 월 210만원이라는 상한액은 실제 임금 수준과 괴리가 크며, 이로 인해 사업주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출산휴가 기간 중 발생하는 연차수당과 퇴직금도 국가에서 부담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현재는 휴가 기간 동안에도 연차가 발생하고 퇴직 시 이에 대한 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부담이 온전히 사업주에게 전가되어 있다.
육아 관련 세제 혜택 확대
돌봄 비용에 대한 세액공제 제도를 도입하여 맞벌이 부부의 육아 부담을 실질적으로 덜어주어야 한다. 프랑스처럼 보육시설 이용비나 돌보미 고용 비용에 대한 세제 혜택을 제공하면, 기업과 개인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인식 전환과 제도 개선이 함께 가야
출산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투자
출산과 육아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동시에 미래 사회의 인적자원을 확보하는 국가적 투자이기도 하다. 현재처럼 이 비용을 개별 사업주에게 떠넘기는 시스템으로는 여성 채용 기피와 경력단절이라는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
여성 10명 중 4명 이상이 직장에서 임금차별을 경험하고 있으며, 채용부터 승진, 퇴직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성차별이 촘촘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런 차별의 근본 원인 중 하나가 임신과 출산에 따른 비용 부담을 사업주에게 전가하는 현행 제도에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과 책임
정부는 저출산 해결을 위해 수십조 원의 예산을 편성하면서도, 정작 출산휴가, 육아휴직 비용은 사업주에게 전가하는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 출산과 육아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부담하고, 기업과 개인이 상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진정한 저출산 대책이다.
임신을 숨기고 눈치보는 사회, 가임기 여성 채용을 꺼리는 기업 문화는 저출산을 더욱 가속화시킬 뿐이다. 이제는 임신과 출산을 개인과 기업의 부담이 아닌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지는 일로 인식을 전환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개선에 나서야 할 때다. 출산 친화적 사회 환경 조성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저출산 극복 정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