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 김포공항에서 도쿄 하네다행 비행기를 탄 김민수(35)씨는 환전소에서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작년 여름엔 86만 원이면 충분했는데, 이번엔 100만 원을 바꿨는데도 10만엔이 안되더라고요. 일본 여행 계획을 거의 다시 짜야 했어요."

최근 몇 개월 사이 급격히 변화한 원-엔 환율은 해외여행객들뿐만 아니라 수출기업과 투자자들에게도 큰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왜 한국 원화만 유독 약세를 보이는 것일까? 더 중요한 질문은 - 이것이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경쟁력 약화를 의미하는 것일까?

🔍 숫자로 보는 충격적 현실

최근 원-엔 환율은 1년 전과 비교해 약 20% 상승했다. 이는 단순히 엔화가 강해진 것이 아니라, 원화가 주요 통화 대비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이고 있는 현상이다.

2025년 4월, 원/달러 환율은 한때 1,480원을 돌파했다. 이 수치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떠올리게 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인 관세 정책이 한국 수출 산업에 큰 타격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중국과 미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인해 양국 간 무역 갈등에서 발생하는 외부 충격에 취약한 상태이다. 원-유로 환율 역시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같은 동아시아 경쟁국인 일본과의 격차다. 2023년 말까지만 해도 '엔저'가 국제 경제 이슈였지만, 2024년 후반부터 상황이 극적으로 반전되었다.

왜 원화만 약해지고 있는가?

1. 금리 격차의 확대

일본은 2024년 초부터 지속적인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30년 만의 제로금리 탈출 이후, 일본은 현재 1.5%대의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와 내수 부진으로 인해 금리 인하 사이클에 진입, 현재 3.0% 수준까지 기준금리를 낮춘 상태다.

* 기준금리: 중앙은행이 정하는 기준 이자율

이런 금리 방향성의 차이는 국제 자본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과거 저금리 국가였던 일본에서 자금이 유출되던 패턴이 역전되면서 엔화 가치는 상승하고, 상대적으로 한국에서는 자금이 유출되며 원화 가치는 하락하고 있다.

2. 수출 경쟁력의 약화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시장에서는 대만의 TSMC 등이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는 반면, 한국 기업들은 수익성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욱이 중국의 기술 추격은 한국 기업들에게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려 한국의 시장점유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첨단 소재와 정밀 장비 분야에서 여전히 독보적인 경쟁력을 유지하며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3. 대외 불확실성과 지정학적 리스크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적, 지정학적 긴장은 원화 가치에 추가적인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 정치적 불안정성과 중국, 러시아, 북한 등 주변국의 도발 위협이 고조될 때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자산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여 코리아디스카운트는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은 상대적으로 이러한 지정학적 위험에서 자유롭고,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통해 안정적인 투자처로 인식되고 있다.

이것은 일시적 현상인가, 구조적 변화인가?

전문가들의 의견은 나뉜다. 하지만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환율 변동이 단순한 시장 요동이 아닌 경제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가 현재 직면한 문제는 단순한 환율 변동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이는 구조적 개혁의 필요성을 알리는 경고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은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규제 혁신, 첨단 산업 육성, 초급속 노령화 대비 등 장기적 전략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경제 전문가는 "한국 경제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존 주력 산업마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며 "이는 단기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전환기의 신호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