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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전세시장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정부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조건을 주택가격의 90%에서 70%로 추가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기존 전세계약 상당수가 보증에 가입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서민 주거 안정을 내세운 정책이 오히려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전세보증은 보증금이 주택가격의 90% 이내일 때만 가입할 수 있다. HUG와 HF는 빌라의 주택가격을 공시가격의 140%로 인정하고 있어 사실상 보증금이 공시가격의 126%까지 허용된다. 그러나 정부가 검토 중인 기준은 보증 한도를 공시가격의 98% 수준으로 낮추는 것으로 분석된다.

부동산 중개 플랫폼 집토스가 국토부 실거래가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올해 4분기 만료 예정인 전국 연립·다가구 전세계약 2만4191건 중 78.1%인 1만8889건이 새로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은 기존 계약의 93.9% 경기도는 80.2% 서울은 75.2%가 보증가입 불가로 분류됐으며 전국 평균 3533만원의 보증금을 낮춰야만 새 기준에 맞출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임대인은 기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반환하고 신규 계약을 맺으려면 수천만원 자금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반전세나 월세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빌라 등 비아파트 전세시장이 직격탄을 맞으며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세사기 예방과 HUG 재정 안정화가 정부의 명분이지만 2023년 5월 90% 규정을 도입한 이후에도 보증사고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HUG 약관이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적용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 권고를 받은 사례도 있어 실효성 논란은 여전하다.

시장에서는 부작용이 뚜렷하다. 기존 임대인들이 보증금 반환 부담에 직면하면서 외국자본과 대기업이 국내 임대시장에 진입할 기회를 얻게 됐고 중소형 임대인의 경쟁력은 약화됐다. 업계는 중소형 임대인 보호 강화와 지역별 차등 적용 등 보완책 없이는 역전세난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서진형 광운대 교수는 빌라시장은 이미 126% 룰에 맞춰 시세가 형성된 만큼 기준 강화는 보증금 반환 불능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도 전세는 내집마련 사다리 역할을 해왔지만 월세화가 가속하면 주거사다리가 무너져 아파트 전세와 매매시장까지 자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수요자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는 A씨는 전세를 통해 내집마련을 하려던 꿈이 사라졌다며 전세제도가 여전히 주거사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이재윤 집토스 대표는 정책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고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가 적응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장기적인 연착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