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퇴직연금이 본래 취지인 노후소득 보장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적립금은 급증했지만 수익률 저조와 연금화 부진, 중도인출 확산 등 구조적 한계가 지속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이 발표한 ‘사적연금제도 연금화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431조7000억원으로 처음 400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받는 비율은 10.4%에 불과하고, 최근 10년간 평균 수익률도 2.07%로 물가상승률을 따라가기 어려운 수준에 머물렀다.
보고서는 "이 같은 구조가 계속되면 퇴직연금이 제도만 남고 실질 기능은 상실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장 시급한 문제로는 낮은 수익률이 지목됐다. 2023년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푸른씨앗)은 6.3%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일반 퇴직연금 수익률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는 정부가 2022년 도입한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가 안착하지 못하고, 가입자의 88.1%가 여전히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고수하는 안전자산 선호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개선책으로 확정기여형(DC) 전환과 기금형 확대를 제안했다. DC형은 자본시장 수익률에 연동돼 저성장 시대에 유리하고, 기금형은 전문가 집단이 운용해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단기적으로는 디폴트옵션 상품군에서 원리금 보장형을 제외하고 실적배당형 중심으로 재편할 것도 주문했다.
또 다른 문제로 중도 인출이 지적됐다. 2022년 한 해에만 약 5만명이 1조7000억원을 인출했고 이 중 46.6%가 주택 구입 목적이었다. 특히 30~40대 가입자의 중도 인출이 집중되며 장기적 빈곤 위험을 키운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상품 매력도 저하도 한계로 지목됐다. 건강한 사람들만 가입하는 ‘역선택’ 구조 탓에 수익비는 0.7 수준이고, 55세 남성 기준 장수 프리미엄도 연 0.5%에 그쳐 가입 유인이 낮다는 분석이다.
한편, 보고서는 연금화를 촉진하기 위해 ▲연금 수령 시 세제 혜택 강화 ▲고령층 대상 연금 개시 연령 연기 옵션 도입 ▲다양한 연금화 상품 개발 등 제도적 인센티브를 확대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