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최고가를 경신하던 은값이 하루 만에 10% 넘게 급락하며 귀금속 시장이 조정기에 들어섰다. 금값 또한 4% 이상 하락하며 연말 투자심리가 빠르게 식었다. 급등세를 이끌던 은시장이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증거금 인상과 차익실현 매물로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12월3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국제 은 현물 가격(XAG)은 전날 장중 온스당 70.49달러까지 떨어지며 직전 거래일 종가인 79.11달러 대비 10.9% 하락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 일간 낙폭이다. 이후 은값은 온스당 74.72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금 현물 가격(XAU)도 같은 기간 4532.29달러에서 4300달러대로 떨어지며 4% 이상 하락했다.
선물 가격 역시 동반 하락했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내년 3월 인도분 은 선물은 온스당 74.56달러로 3.5% 떨어졌고, 금 선물은 4387.40달러로 3% 이상 하락했다.
이번 급락의 직접적인 계기는 CME의 마진 증거금 인상이다. CME는 이달 29일부터 은과 금 등 금속 선물 계약의 유지 증거금을 1계약당 약 25000달러로 상향했다. 이 조치는 레버리지를 이용한 투자자들에게 추가 자금 납입 부담을 주며 강제 청산을 촉발했다. 그 결과 단기간에 대규모 매도세가 쏟아졌다.
최근 1년 사이 은 가격 추이=네이버 시세 갈무리
전문가들은 여기에 급등세에 따른 차익실현이 겹치면서 하락폭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올해 초 온스당 29달러 후반에 거래되던 국제 은값은 1년 동안 150% 넘게 오르며 80달러선을 돌파했다. 반면 금값은 중앙은행의 대규모 매입과 달러 약세에 힘입어 연초 대비 67% 상승한 바 있다.
은은 금값을 추종하면서도 거래량이 적어 변동성이 심한 특성을 가진다. 이 때문에 ‘악마의 금속’으로 불린다. UBS는 최근 보고서에서 금값이 단기 과열 상태에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내년 3분기까지 온스당 5000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산업용 수요 측면에서도 은의 중요성은 크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최근 “은은 많은 산업 공정에 필요한 금속이며 가격 급등은 좋은 징조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아울러 비영리 단체 실버 인스티튜트는 전 세계 은 소비량의 60%가 산업용으로 사용된다고 밝혔다. 실버 인스티튜트 회장 마이클 디리엔조는 “은은 전자제품과 컴퓨팅에 필수적인 요소이며 스위치가 있는 거의 모든 제품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전 세계 은 시장은 5년 연속 공급 부족 상태에 놓여 있다”고 덧붙였다.
공급 불안도 여전히 남아 있다. 세계 3위 은 생산국인 중국은 내년 1월부터 수출 통제 조치를 시행할 것으로 알려졌고, 지난해 10월 미국이 은을 핵심 광물로 지정하면서 향후 관세나 무역 제한이 추가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하락이 단기 조정에 그치지 않고 추세 전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고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수석 전략가 마이크 맥글론은 “가격이 과열 국면에 접어들면 경계가 필요하다”며 “금에 낙관적인 투자자에게 지금 필요한 단어는 ‘이익 실현’”이라고 말했다.
한편, 투자자들은 실물 매입 외에도 상장지수펀드(ETF)나 상장지수증권(ETN)으로 금·은·구리에 투자하는 방법도 있다. KODEX 골드선물(H), TIGER 금은선물(H)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매매 차익에는 15.4%의 배당소득세가 부과된다.
만약 세금 혜택을 원한다면 KRX 금시장이 유리하며, 양도소득세와 배당소득세가 면제된다. 실물 인출 시에는 10%의 부가가치세가 붙는다. 해외 직구 시에는 8% 관세와 10% 부가가치세가 추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