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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자산가들의 탈출이 전 세계적으로 본격화되고 있다. 유럽의 세금 개편과 아시아의 정치 불안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며 특히 한국의 순유출 규모가 2배 증가해 세계 4위에 올랐다. 국경을 넘어가는 자산의 흐름은 단순한 부유층 이동을 넘어 각국 경제와 사회에 장기적인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되고 있다.

26일 헨리앤파트너스가 발표한 '2025 부의 이동'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고액자산가(HNWI)의 국제이주 규모는 14만2000명으로 예상되며 이는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 규모다. HNWI는 투자 가능한 유동자산 100만달러 이상을 보유한 개인으로 이번 수치는 6개월 이상 타국에 거주할 계획이 있는 경우만 포함됐다.

‘웩시트’로 1위 된 영국…한국도 순유출 2배 늘어
올해 부자의 순유출이 가장 많은 국가는 영국으로 총 1만6500명이 떠날 것으로 전망됐다. 브렉시트 이후 유입국에서 유출국으로 전환된 영국은 올해 처음으로 순유출 1위에 올랐다. 결정적 계기는 '비영구거주자(non-dom)' 제도의 폐지다. 해외 소득에 대한 비과세 혜택이 사라지자 웩시트(Wexit) 현상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이들이 가지고 떠나는 자산 규모는 918억달러에 달한다.

한국은 올해 2400명의 부자가 순유출할 것으로 예측돼 전세계 4위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1200명)보다 2배 증가한 수치이며 자산 규모로는 152억달러가 함께 빠져나갈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부자 이주는 2022년 400명, 2023년 800명에 이어 3년 연속 증가세다. 보고서는 한국의 정치 불안과 경제 불확실성이 배경이라고 지적하며 12·3 비상계엄과 같은 사회적 혼란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중국과 인도는 각각 7800명과 3500명이 유출될 것으로 보이며 이는 과거보다 감소한 수치다. 보고서는 중국의 기술도시 성장과 인도의 역유입 현상을 이유로 들었다.

중동·남유럽에 몰리는 부자들…주거·세제·투자 환경이 변수
반면 가장 많은 부자가 유입될 국가는 아랍에미리트(UAE)로 9800명이 들어올 것으로 예측됐다. 미국은 7500명으로 2위에 올랐으며 스위스(3000명), 이탈리아(3600명), 사우디아라비아(2400명) 등도 인기 유입국으로 나타났다. 이탈리아는 영어 사용이 용이하고 해외 소득에 과세 한도를 두는 제도 등으로 이주 선호도가 높다.

그러나 유입이 늘어난 도시에서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닛케이에 따르면 밀라노 중심부 임대료 급등으로 경찰과 청소부 같은 필수 노동자가 외곽으로 밀려나 도시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국제정치 전문가 파라그 칸나 박사는 한국과 대만을 예로 들며 “지정학이 부의 이동 경로를 단번에 바꿀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세계 고액자산가의 탈출 행렬은 단순한 자산 이동이 아니라 각국의 제도적 신뢰와 안정성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