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 흐름이 본격화되면서 예금금리가 빠르게 떨어졌고 지난 3월 이후 은행에서 20조원 넘는 자금이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빠진 자금은 주식시장과 부동산으로 유입된 것으로 분석된다. 같은 기간 개인신용대출도 3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예금금리가 1%대까지 내려가면서 자금을 다른 투자처로 옮기려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17일 기준 629조7916억원으로 집계됐다. 3월 말 650조1241억원에서 약 20조3325억원이 줄었다. 요구불예금은 입출금이 자유로운 계좌로 투자대기성 자금으로 분류된다.
같은 기간 5대 은행의 가계신용대출 잔액은 104조3835억원으로 3월 말(101조6063억원) 대비 2조7772억원 늘었다. 이 가운데 1조690억원은 6월 들어 보름 만에 증가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7월 시행 예정인 DSR 3단계를 앞두고 신용대출 수요가 몰렸고 이달 증시 활황으로 투자자금 마련이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7일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65조202억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60조원을 넘었다. 예탁금은 2020년 11월 국내 증시 상승장 당시 처음 60조원을 돌파했고 2021년 5월3일에는 77조9018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후 2022년 5월부터는 40조~50조원대에 머물렀다.
챗GPT로 생성된 이미지 (그림=머니마켓미디어 제작)
부동산 시장에도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6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26% 상승했다. 19주 연속 상승세다. 같은 날 기준 5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596조4178억원으로 보름 전보다 약 2조7562억원 늘었다.
예금금리는 빠르게 낮아지는 중이다. KB국민은행은 9일부터 정기예금 3종의 기본금리를 0.10~0.25%포인트 인하했다. IBK기업은행(최대 0.25%포인트), SC제일은행(최대 0.20%포인트), NH농협은행(최대 0.30%포인트)도 수신상품 금리를 인하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시중 19개 은행의 1년 만기 예금금리는 평균 2%대이며 일부 은행에서는 1%대 상품도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금금리 메리트가 사라진 데다 증시와 부동산이 활황세를 보이고 있어 자금 이탈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기준금리가 4회 연속 동결되면서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 인하 속도에 제약이 생겼다. 1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17~18일(현지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4.25~4.50%로 유지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다음 달 미국 기준금리 동결 확률은 90.7%였다. 한 달 전보다 23.8%포인트 오른 수치다.
연준의 이번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가 배경으로 작용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관세 효과의 규모나 지속 기간 등이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BoA(뱅크오브아메리카)와 도이치뱅크는 연준의 태도를 다소 긴축적(매파적)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한국은행도 다음 달 기준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과 미국 간 금리 격차는 현재 2.0%포인트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전 9시10분 기준 1375.2원으로 전날보다 5.8원 상승했다. 한국은행은 중동 지역 긴장 고조와 연준의 정책 불확실성 등 외부 변수에 따라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 가능성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 집값 상승세도 금리 인하의 부담 요인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3월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이 연율 기준으로 약 7% 상승했다”며 “금리를 과도하게 낮출 경우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