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이민당국에 구금된 김태흥(오른쪽 첫번째) 씨가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해 찍은 사진 (사진=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

미국에서 35년 넘게 거주해온 한국 국적의 한인 영주권자가 입국 과정에서 구금된 채 이유조차 듣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인권 침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연구자 신분에 정부 지원까지 받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미국 이민 행정의 실체에 비판이 쏠린다.

31일(현지시각)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KACE)에 따르면 텍사스 A&M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태흥 씨(40)가 지난달 21일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입국 심사 중 ‘2차 심사’ 대상으로 분류된 뒤 현재까지 연방 당국에 억류돼 있다. 김 씨는 가족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뒤 귀국길에 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구금 사유가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 씨의 변호인은 “이민 당국이 구체적인 혐의를 밝히지 않고 있으며 변호사 접견도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까지 김 씨는 가족과의 통화는 단 한 차례 허용됐을 뿐이고, 법률 상담은 사실상 차단돼 있는 상태다.

당국이 문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2011년 김 씨가 소량의 대마초를 소지한 혐의로 기소된 전력이다. 그러나 당시 사회봉사 명령을 성실히 이행했고, 별도의 실형 없이 사건이 종결됐다. 김 씨 측은 “당시 경미한 처벌을 모두 이행했음에도 구금 조치가 내려진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김 씨는 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 뒤 현재까지 35년 이상을 미국에서 거주해 왔다. A&M대학 박사과정 중 라임병 백신 연구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 연구는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로 알려졌다. 미교협은 “김 씨는 미국 사회에 기여해온 인물이며, 지금의 처우는 명백한 권리 침해”라고 주장했다.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은 워싱턴포스트(WP)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영주권자가 마약 관련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출두 명령이 발부될 수 있으며, 구금 조치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추방작전부(ERO)와 협의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WP는 트럼프 행정부 이후 강화된 이민 단속이 단순 불법 체류자를 넘어서, 소규모 전과를 지닌 합법적 비자 소지자나 영주권자까지 무차별적으로 겨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헌법 적용 예외’라는 표현이 공공연히 사용되는 현실에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 씨의 어머니는 “아이들이 사실상 미국에서 자라 미국이 고향인 셈인데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런 대우를 받아선 안 된다”며 “자유와 평등을 믿고 이민 온 우리 가족에게 이 상황은 참담하다”고 말했다. 김 씨의 가족은 1980년대 미국에 정착한 뒤 시민권을 취득했지만, 김 씨와 동생은 미성년 자동 귀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시민권자가 되지 못했다.

미교협은 김 씨가 만성 천식을 앓고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스트레스로 인해 증상이 악화할 수 있으며 현재 약물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도 확인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CBP는 억류 가능 시간을 최대 7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음에도 이를 훨씬 초과하고 있으며, 이는 명백한 법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미교협은 김 씨가 정식 재판을 통해 법적 권리를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동시에, 연방 의원들에게 사건을 알리고 공론화를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