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삼성전자 뉴스룸)
삼성전자가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와 체결한 22조8000억원 규모의 인공지능(AI) 반도체 공급 계약이 공식화되면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판도 변화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대만 TSMC가 장악한 기존 질서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31일 삼성전자와 외신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28일 공시한 22조7647억원 규모의 파운드리 계약의 고객사를 기존 '글로벌 대형 기업'에서 '테슬라'로 정정했다. 삼성전자는 “계약상대방이 영업비밀 보호 요청 중에서 계약상대 공개를 동의했다”고 밝히며 정정 사유를 공시했다. 다만 세부 계약명과 조건은 아직 비공개 상태다.
이번 계약은 미국 텍사스 테일러시에 위치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테슬라의 차세대 AI칩(AI6)을 수년간 위탁 생산하는 내용이다. AI6는 자율주행차를 비롯해 로봇과 서버 등 테슬라의 차세대 인공지능 기반 사업 전반에 활용될 예정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삼성의 텍사스 공장은 테슬라 AI칩 생산에 전념하게 될 것이며, 자신이 직접 생산 진행 상황을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공장은 머스크 자택에서 차량으로 20분 거리에 있다.
삼성전자의 계약 발표 직후 머스크는 X(옛 트위터)를 통해 "165억달러는 단지 최소 금액이며 실제 생산량은 이보다 몇 배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머스크가 이번 계약을 통해 긴밀한 협력 체제를 구축한 사실도 확인됐다. 머스크는 “삼성 회장과 고위 경영진과 화상 통화를 통해 파트너십을 논의했다”고 덧붙였다.
시장조사업체 번스타인은 이번 계약이 삼성전자 파운드리 부문의 수익성 회복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번스타인은 “계약으로 삼성의 연간 파운드리 매출이 최대 25억달러(약 3조4700억원)까지 증가할 수 있다”며 “계약 전체 매출은 약 80억달러(약 11조11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테슬라가 언급한 전체 계약 규모와는 차이가 있지만, 추가 수요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에서 기대감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약 8%로, TSMC의 60~70%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테슬라와 같은 전략적 고객 확보를 계기로 입지를 넓힐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분석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미국, 대만, 한국 중심으로 나뉘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삼성의 위치가 이번 계약으로 재조명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번스타인은 이 계약이 당장 웨이퍼 제조장비 시장(WFE)의 성장을 촉진하진 않겠지만, 파운드리 수요 확대로 인한 중장기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TSMC에는 이번 계약이 단기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을 것으로 봤다.
한편, 삼성전자 주가는 이번 계약 발표 이후 1년 만의 최고가를 경신하며 시장 기대를 반영했다. 전문가들은 “공급망 변화의 시작점으로 삼성전자의 중장기 반도체 전략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