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통한 체류 비자 취득 후 배우자가 잠적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제도의 허점과 피해자의 고통이 드러나고 있다. 실질적인 혼인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도 법적 절차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당사자가 장기간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 거주나 관계 유지 없이도 비자가 유지되는 구조는 결혼이라는 제도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9일 YTN 라디오 ‘조인섭 변호사의 상담소’에 출연한 남성 A씨는 필리핀 국적의 여성과 혼인신고를 한 지 7년이 지났지만 아내가 집을 떠난 뒤 돌아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당시 아내는 인턴으로 한국에 체류 중이었으며 연애 6개월 만에 결혼에 이르렀다. 그러나 결혼비자가 발급되자마자 고국에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 사실상 잠적했다. 그 뒤로 아내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연락도 두절된 상태가 지속됐다.
A씨는 그동안 수백 번 전화와 문자를 시도했지만 응답은 없었다고 전했다. 유일하게 연락이 온 시점은 아내가 비자 연장을 해야 할 때였다. 당시 아내는 필요한 서류만 요구하고 다시 사라졌다고 밝혔다.
A씨는 아내가 첫사랑이었기에 언젠가 돌아오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왔지만 이제는 그 기대가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결혼생활에 더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이혼을 결심하게 됐지만 연락이 끊긴 아내와 이혼이 가능한지에 대해 상담을 요청했다.
이와 관련해 이재현 변호사는 "한국인과 외국인이 결혼했더라도 한국에 거주하는 배우자가 있다면 대한민국 법에 따라 이혼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배우자의 소재가 불분명한 경우 공시송달 제도를 통해 이혼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상대방을 찾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했다는 사실을 법원에 객관적인 자료로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이혼이 확정되면 외국인 배우자는 결혼이민 비자 자격이 사라져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A씨의 사례는 혼인 이민 비자 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현재는 혼인신고를 기준으로 비자가 발급되기 때문에 결혼생활에 진정성이 있는지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기 어렵다. 결혼 자체가 체류 자격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를 걸러낼 장치는 미비한 실정이다.
비자가 발급된 이후에도 실제 혼인관계가 유지되는지를 검토하거나 관리하는 시스템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A씨의 아내가 비자 연장을 앞두고서야 연락을 취한 것은 체류 목적이 결혼생활보다 우선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로 인해 제도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악용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혼 절차 역시 복잡하다. 배우자의 소재를 알 수 없는 경우 공시송달을 통해 소장을 전달하는 방식이 가능하지만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려면 연락을 시도한 내역 등 구체적인 입증이 필요하다. 특히 상대방이 해외에 체류 중이라면 소재 확인은 더욱 어려워진다. 이 경우 재산 분할이나 위자료 청구 등 실질적인 권리 구제도 사실상 불가능해 피해자가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려운 구조다.
문제는 결혼 전부터 시작된다. 국제결혼을 앞둔 한국인들이 상대방의 배경이나 결혼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 창구가 부족하다. A씨처럼 결혼생활이 사실상 단절된 피해자들이 정보 부족으로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처럼 혼인신고 이후 발생하는 법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체류 목적 혼인을 사전에 차단하고 피해자에 대한 법률적·심리적·경제적 지원을 강화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