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지출 증가와 제도 악용 사례가 맞물리며 건강보험과 실손의료보험의 재정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서울대 연구진은 향후 건강보험료율이 현재의 3.5배에 달할 수 있다고 경고한 가운데, 실손보험에서는 진단서만으로 보험금을 받는 등 제도 허점을 이용한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보험료는 계속 오르는데 국민의 신뢰는 낮아지고 있어 사회보장제도의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
28일 서울대 산학협력단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수행한 ‘초고령사회 대응 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 보고서를 통해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의 장기 재정 전망을 제시했다. 연구진은 현행 7.09% 수준인 건강보험 보험료율이 2035년 10.04% 2050년 15.81% 2072년에는 25.09%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보험료율도 0.91%에서 2072년 13.97%로 15배 이상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같은 보고서에서는 65세 이상 고령층이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3년 44.1%에서 2050년 70.2%까지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는 요양급여비도 2023년 83조원에서 2050년 352조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보험료 상승이 ▲의료비 증가 ▲보장성 강화 정책 ▲임금 상승률 둔화 등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번 예측은 실제보다 과소평가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지출 구조 효율화 노인연령 기준 조정 돌봄 인력 확충 등 종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와 정반대되는 흐름도 확인된다. 실손의료보험을 악용한 구조적 문제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보험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실손의료보험 손해율은 120%를 넘어섰고 일부 가입자들은 병원에 내원해 진료 없이 진단서만 받고 보험금을 청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보험사 관계자에 따르면 동일 진료코드로 한 달간 10회 이상 청구된 사례도 확인됐고 일부 병원은 단순 문진 후 진단서 발급만을 위한 진료를 운영하며 보험금 청구를 유도하는 방식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사례도 적발됐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부산의 한 병원에서는 줄기세포 치료로 위장하고 미용 목적의 수술을 시행해 수십억원대 보험금을 받아냈다. 이 병원장은 해당 사기 조직의 운영자로 지목됐고 다수 환자가 보험설계사였으며 브로커를 통한 수익 분배 구조도 갖추고 있었다.
외국인의 실손보험 청구 사례도 문제다. 2023년 기준 중국인 가입자에게 지급된 실손보험금은 월 100억원을 넘어섰고 일부는 병력을 숨기고 국내에 입국해 수술을 받은 뒤 보험금을 청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지 의무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악용 사례가 반복되는 배경에는 처벌의 미약함도 있다. 보험연구원의 ‘KIRI 보험법리뷰’ 제28호에 따르면 2022년 보험사기 혐의로 검찰 처분을 받은 7385명 중 기소된 비율은 38.5%에 불과했고 그중 절반 이상은 구약식으로 종결됐다. 불기소 처분의 86.8%는 기소유예였다.
한편 실손보험금 청구는 비대면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보험사는 서류 검토만으로 심사를 진행한다. EMR과 보험사 간 실시간 연계 시스템은 없고 인공지능 분석 자료도 부족해 정밀 심사에는 한계가 있는 상태다. 의사의 판단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진단서의 유효성이 인정되는 구조도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도 이와 관련한 논의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